커져가는 독점재벌 헤게모니 독점재벌 해체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태광(헬조선변혁 전국추진위 자문위원)
쇠퇴하고 사멸하는 자본주의, 계속되는 시스템 붕괴 위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째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지금도 세계 경제는 시스템 붕괴(공황)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인플레이션 처방으로 긴축과 고금리가 실시되었는데 채권, 부동산 가격의 폭락과 그로인한 은행의 파산이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몰라 아슬아슬하다. 그럼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이제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거품을 조성한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없이 금리인하는 어렵다. 경기 침체가 와야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그래야 금리가 인하될 수 있는데, 부채가 막대한 만큼 부채 축소 과정이 급격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붕괴가 발생하고 그 결과 급격한 금리 하락이 뒤따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이 대중의 눈에는 금리가 정점에서 하락으로 전환하는 국면에서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금리 인하가 이루어져 경제가 살아나고 부담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하는 시스템 붕괴가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의 위기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되는 경기순환 상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자본주의는 1960년대 중반 이후로 장기간에 걸쳐 이윤율 저하가 경향적으로 관철되고 있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 노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윤율 저하는 자본의 확대재생산(성장)을, 노동력 감소는 자본의 단순재생산(현상 유지)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저성장을 거쳐 제로성장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가 쇠퇴를 넘어 사멸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기는 사멸로 가는 과정 속의 위기이고 자본주의가 한계에 직면한 위기이며 따라서 회복이 불가능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황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 금리를 더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그래서 가계부채는 더 늘어나고 있다. 뇌관은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돈을 빌려줄 때 자금조달의 기초를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사업주의 신용이나 물적담보에 두지 않고 프로젝트 자체의 경제성에 두는 금융기법) 대출이다. 레고랜드 사태에서 이미 확인되었고 최근의 새마을금고 사태로 다시 확인되었다. 새마을금고 뱅크런은 부동산 PF 부실과 채권 거래 위험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올해 들어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특히 2금융권이 위험하다. 증권사 PF 연체율은 6월 기준으로 15.88%에 이르고 PF 대출금이 10.7조인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분기에 5.07%에 이르는데 다른 곳도 나을 것이 없다. 최근의 아파트 가격 하락과 대량의 미분양,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실시공으로 태영, 롯데, GS, 현대산업개발 등의 재벌 건설사들도 위기에 처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 건설사들의 PF 대출은 대부분 연체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건설사와 금융사의 연쇄 파산이 우려된다.1)
독점재벌 살리기가 된 경제 살리기
경제 위기에 직면한 세계는 경제 살리기에 몰입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경제 살리기는 기업 살리기이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권력이 나서 감세하고 노동시간 연장하고 임금 삭감하는 조치를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여야 할 것 없이 나서서 집 값 하락을 막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전히 없애고 국가가 미분양 주택을 대대적으로 사줘야 한다고 선동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 살리기는 재벌 살리기가 된다. 대기업 대부분이 재벌이고 재벌이 한국 경제를 장악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소수의 지분으로 개별 기업의 상법상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2)를 무력화시키고 그 위에 군림하면서 그룹 전 계열사를 지배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의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와 가족들의 사익을 온갖 불법을 총동원하여 추구하는 총수경영, 족벌경영에 의한 대기업집단인 재벌은 그 자체로 불법이고 노동자‧민중의 부를 수탈하는 반사회적 집단이다. 이것은 재계 서열 1,2위인 삼성, SK의 국정농단과 4.5조원의 분식회계를 통한 이재용의 총수 승계 과정과 회사 돈 465억원을 횡령하고 선물옵션에 투기하여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년 6개월을 복역하고도 뻔뻔하게 총수경영을 하고 있는 최태원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더구나 재벌은 막대한 금력을 이용하여 정관계 인물들을 매수하여 그들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재벌이 지배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선거에 수백억의 정치 자금을 뿌리고 판검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떡값을 주고, 광고로 언론사를, 학술지원금으로 교수들을, 고연봉으로 그룹 정규직 상층을 매수해왔다. 그래서 사회 상층이 재벌과 일체화되었고 이제 전 국민을 재벌과 일체화시키는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재벌이 지배하는 체제가 되다보니 그들이 수많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쉽게 석방되고 사면복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전경련-박근혜 국정농단과 이재용 재판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재벌은 그 자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법적 조직이었다. 그래서 재벌이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특히 문어발 경영으로 국가 부도를 초래한 IMF 신탁통치 이후 재벌해체 또는 약하게는 재벌개혁의 이름으로 끊임없는 수술의 대상이 되어왔다. 2016년에도 국정농단으로 촛불혁명의 원인이 되어 해체 요구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전경련조차도 해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재용을 문재인은 석방하고 윤석열은 사면하였으며, 4.5조원 분식회계마저도 면죄부를 주고 있지만, 총수 및 족벌경영과 대기업집단이라는 재벌은 도려내야 할 폐해로 남아있었다.
확장되고 있는 노골적 재벌 옹호
그런데 최근에 와서 재벌을 상징하는 총수경영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일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데 개인이 아니라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경제성장 이끄는 법무행정과 기업의 역할”이라는 강연이다. 한 장관은 “기업의 성장이 대한민국의 성장 그 자체”라며 “대한민국을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회장과 같은 여러분들의 선배 기업인들이자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혁신을 실현하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기업인의 나라’”라고 하면서 재벌과 재벌총수들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고비마다 정부의 결정적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며 그것이 정부나 정치의 역할이라고 역설하였다.
말하자면 이 나라는 기업가의 나라이고 이 나라의 성장은 재벌 총수들의 영웅적 활약에 의한 것이고 정부, 정치의 역할은 자본 축적의 위기에 재벌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결정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는 기업과 재벌을 동일시하면서 재벌이 지배권력이고 정부는 재벌에 복무하는 하위권력으로서 재벌의 자본 축적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재벌의 자본 축적의 결정적 계기를 이승만의 농지개혁, 박정희의 중공업정책, 노무현의 한미 FTA를 들고 있고 지금 경제 위기 국면에서 자본축적의 결정적 수단으로 대대적 이민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민을 통해서 저임금 노동력을 대거 공급하여 노동력 감소에 따른 가치량 축소와 경제 축소를 막고 자본의 축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 장관이 정권의 실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 가지고 있는 재벌동맹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윤정권의 재벌동맹전략은 아주 분명하다. 재벌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자본 축적의 결정적 토대를 만들어 주겠으니 그들을 정치동맹으로서 손잡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69시간 노동제, 직무성과급제, 최저임금 실질적 삭감 등은 어쩌면 곁가지인 셈이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내용없이 정권을 획득했지만 장기간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그들의 전략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민주당 또한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 내 친이재명계 김병욱, 좌장인 정성호 의원 등이 주도하고 의원 24명이 참여하는 ‘글로벌기업 국제경쟁력 강화 민주당 의원 모임’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동 주최로 2차례의 세미나3)를 연달아 개최하며 재벌 총수-가족 경영을 옹호하고 나섰다. 김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를 앞두고선 민주당 강령에서 ‘재벌개혁’과 ‘금산분리’ 문구를 빼자고 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김병욱 의원은 “공정을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 경쟁력 부분에도 초점을 맞춰서 기업을 바라봐야 한다”며 “수십 년 간 재벌 총수 일가의 불공정거래와 문어발 확장을 비판해왔는데, 경쟁력 있는 산업들은 결국 또 그분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된 경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정성호 의원도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낸 기업문화가 잘못됐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나아가 일부 참석자는 대기업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규제하는 틀을 없애고, 상속세를 유산세(상속액 전체에 과세)에서 유산취득세(상속인이 물려받는 재산 기준으로 과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고 한다.
물론 재벌 총수경영 옹호에 대해 비판적인 의원들도 있고 민주당이 재벌개혁을 아직 강령 해설에서 적시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 십 명이 참여하고 있는 의원모임, 그것도 친이재명계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재벌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것으로, 재벌을 옹호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도 2017년 1월, 19대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재벌해체가 아니라 "이 시대 최고권력 재벌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2021년 7월 20대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는 재벌체제 해체마저 삭제하고 "규제 합리화로 기업의 창의와 혁신이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미 대기업집단으로서의 재벌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이었고 단지 1인 총수지배, 부당내부거래 등을 손보는 재벌체제 해체만을 주장하였으나 그마저도 2년 전에 폐기하였는데 이제는 재벌체제에 대해서도 묵시적 동의에서 적극적 옹호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4)
민주당은 항상 친자본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그들은 적극 지지하였다. 노무현은 좌파신자유주의라고 스스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것은 양극화 해소와 세계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자본자유화와 노동유연화를 장착하고 있는 전 지구적 자본운동인 세계화가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구상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기만이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는 신앙처럼 추구했지만 그래도 재벌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벌개혁은 여전히 강령에 남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서는 재벌개혁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벌 총수들과의 밀월이 깊어졌다. 사실상 재벌개혁은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이제 이재명에 와서 재벌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재벌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그들과의 동맹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재벌중심 경제구조 변혁없는 대항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실패
그런데 민주당 내부의 재벌에 대한 공개적 옹호 시도가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대안적 사회구성체 수립의 실패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분단 블록의 극복과 그 한계: 그람시 이론을 통한 한국 사회구성체 분석(2020)’이라는 논문에서 최용섭 교수는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역사적 블록으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토대) - 반공주의와 발전국가(상부구조)를 구성 요소로 하는 분단블록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과 재벌에 의해 주도된 분단블록은 1990년대 IMF 경제위기와 그 여파로 권력을 장악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된 남북화해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한 대항 헤게모니 프로젝트로서 평화블록5)은 분단블록을 대체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는데 결정적으로 분단블록의 토대인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변혁하는 대안을 가지지 못하고 상부구조만 반공에서 화해협력으로 바꾸려고 한데 있다고 보았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세력은 정권 연장을 위해서 급속한 경제 성장에 연연하게 되어 재벌 중심의 수출 전략에 기대게 되고, 그 결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변혁없는, 토대의 변혁없는 평화블록을 제시하는데 그쳐 결국 실패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낡은 것은 더 이상 작동이 되지 않지만 대안적 역사적 블록 즉 새로운 것은 오지 않는 공백기가 이어지고 있고 그래서 온갖 퇴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걸림돌이 된 기존의 분단블록을 종식시키는 열쇠가 재벌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인데 민주당 중심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세력은 이것이 결여되어 실패했다는 것이다.6)
지금의 재벌 옹호 기류와 최용섭 교수의 분석을 연결시켜보면 민주당 중심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재벌경제의 구조변혁에 대한 대안을 가지지 못해 대안적 역사적 블록을 창출하는데 실패하고 친재벌적으로 횡보하다가 이제 재벌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노동자‧민중의 변혁적 요구에 눈치보며 기만적으로 편승했던 그들의 필연적 귀결이 아닐까? 민주당의 시작이 친일지주계급이 만든 한국민주당, 한민당임을 상기하자.
독점재벌 해체요구 없는 진보운동
그렇다면 재벌경제 구조변혁과 관련하여 진보운동은 다른가? 진보운동 내에서 다수파인 민족해방(NL) 세력, 자주민족주의자들(Independence nationalists)도 동일한 결함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선 민족모순 해결, 후 계급모순 해결이라는 전략을 취해왔다. ‘자주 없이 민주 없다’는 구호는 그런 전략의 표현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미군 철수와 남북간 화해, 평화, 통일이 우선되고 경제구조 변혁은 뒤로 미루어진다. 따라서 재벌해체 등과 같은 경제구조 변혁은 외면되면서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 동맹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자주민족주의자들은 민주당과 손을 잡고 평화블록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 가담해왔다. 그런 가운데 그들 간의 차별성이 점차 약해지고 노무현정권의 주요세력 중 하나였던 유시민, 천호선 등의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2011년 통합진보당이다.7) 자주민족주의자들의 민주당과의 유착관계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2023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의 노골적인 친민주당 행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진보운동에서 재벌해체라는 외침을 들을 수가 없다. 1997년 국민승리 21에서 이미 재벌해체 대신 재벌체제 해체 즉 재벌개혁으로 교체되었고, 이어서 2011년 통합진보당도 당 강령에서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를, 현재 진보당 또한 ‘재벌의 독점경제 해체’를 명시하여 재벌해체가 아닌 재벌개혁으로 일관해왔다. 이것이 재벌해체가 아닌 것은 재벌을 그대로 두고 개혁함으로써 국민경제에 대한 재벌의 경제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기본과제 해결에서 장기적 기본방향(목표나 당면과제가 아니다!)으로 재벌해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당면 과제는 총수‧가족 경영과 부당내부거래 규제와 같은 재벌개혁에 그치고 있고8) 그나마 실천적 운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주의를 말하는 진보좌파들이 있긴 하지만 근본변혁에 대한 선전, 학습만 얘기할 뿐 당면 정치투쟁으로 무얼 실천해야 하는지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 선전을 위해 의회주의 정당을 만드는 모순적 행보를 하고 있다. 당면 변혁도 없고 재벌경제 구조변혁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더욱이 이들은 기만적이기까지 한데, 예를 들어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재벌해체를 주장하지 않고 재벌체제해체를 주장했다. 얼핏 들으면 “체제해체”를 주장하므로 변혁적인 요구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변혁적 외관 하에 재벌의 총수체제만을 문제 삼고 재벌총수 경영권 박탈운동만을 주장하여 불법적으로 거대 기업집단을 구성하여 국민경제에 대한 과두지배를 하고 있는 재벌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한다. 또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같은 좌파는 재벌을 한꺼번에 국유화하면 되는 데, 무슨 이유로 재벌을 해체하여 자본주의를 합리화 하느냐면서 재벌해체에 반대한다.
이와 같이 진보좌파들은 재벌해체투쟁을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기만으로 규정하고 무시한다. 그들은 독점재벌이 반공블록, 더 정확하게는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의 토대이므로 재벌해체는 한국의 지배적 블록의 토대를 허무는 혁명적 상황의 전개이며, 자본의 사회적 권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노자계급 간의 힘 관계가 결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고, 근본변혁으로 가는 유리한 지형을 제공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체제 내 학자가 볼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촛불혁명에 대한 배반을 보면서 지난 수 년 동안 다시는 ‘죽 써서 개주면 안 된다’는 말들이 많았다. 가두를 장악한 노동자‧민중이 광장권력을 민주당 정권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과오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말이었다. 더 냉정히 보자면 노동자들은 혁명의 전 과정을 자신의 변혁적‧정치적 요구도, 깃발도, 대오도 없이 개별로 참여했지 계급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촛불혁명 실패의 진정한 원인인데 이러한 것을 분명히 바꾸지 않는 운동, 독점재벌 해체와 같은 토대 변혁에 대한 요구 없이 상부구조만을 바꾸자는 운동, 검찰독재 “윤석열 정권 퇴진” 같은 운동은 또 다시 민주당 지지운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독점재벌해체투쟁을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우리는 2016~17년 촛불혁명 과정 속에서 헬조선 악의 축 해체투쟁을 전개하였다. 수구정당, 정치검찰, 수구사법, 수구언론과 그 토대인 독점재벌 해체를 외쳤는데 당시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외 어떤 정치적, 변혁적 요구도 없던 상황에서 그나마 노동자‧민중들에게 가야할 길을 제시한 올바른 투쟁이었다. 이때의 투쟁과 각성이 2021년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원회(이하 헬조선변혁)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다소 나열식이었던 헬조선 악의 축 해체 요구는 2023년 독점재벌 해체, 노동악법 철폐, 보수양당독재타도, 민중권력 쟁취라는 강령에 기반한 주요 투쟁과제와 정세적 요구로서 제국주의 전쟁 반대로 체계화되었고 그에 대한 실천투쟁을 전국적 차원에서 전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더 나아가 이러한 투쟁들을 요구하는 객관적 조건으로서 토대로서 재벌과 상부구조로서 파쇼권력을 포괄하는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당면 사회적 구성으로서 구체화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성립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성을 갖고 있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토대인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변혁 없는 대안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재벌해체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벌해체를 부여잡고 끈질긴 투쟁을 해왔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집중된 “재벌도 공범이다 독점재벌 해체하라!”는 선전·선동, 삼성 이재용 중형구속 및 삼성재벌 해체투쟁, 삼성의 하수인 사법부 해체투쟁, 대구 삼성프라자, 삼성상회, 서울 전경련 앞 규탄집회 등 줄기찬 투쟁을 해왔다.
그동안 운동세력 누구도 외치지 않는, 그러나 헬조선변혁이 끈질기게 부여잡고 씨름해 온 독점재벌 해체투쟁은 수구보수가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자유보수가 총수경영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재벌의 헤게모니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 이르러 그 중요성이 더욱 배가되고 있다. 저들의 지배력이 더욱 강해질수록, 그것을 거부하는 반작용도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므로 재벌지배에 대한 민중의 거부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 시점을 적극 활용하여 독점재벌 해체와 민중권력쟁취가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대중적으로 확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 투쟁의 확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먼저 헬조선변혁의 정치투쟁을 더 힘있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전국적 통일성을 높이고 선동의 내용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주요 정치 요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강한 응집력은 대오의 확대와 대중적 확산을 위한 기본인데 이것은 회원 역량의 집단적 강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주변 동료들과 헬조선변혁의 정세 분석과 투쟁방침, 주요 정치과제, 당면 변혁의 성격, 조직사상을 내용(온라인 선전매체에 있다)으로 지속적인 토론과 학습, 실천을 꾸려나가려는 당찬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이유로 하나는 헬조선변혁이 제기하는 정치적 요구들은 노조 간부나 활동가들조차도 평소에 조합주의나 개량주의에 매몰되어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변혁적 요구들이기에 일회적이거나 간헐적 대화를 통해서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토론, 학습, 실천을 위한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과정 속에서 회원 개인의 운동역량이 최대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위기, 민생파탄의 위기를 독점재벌 해체와 민중권력 쟁취 투쟁으로 헬조선 변혁의 기회로 만들어 나가자. 그 길이 우리가 부단히 걸어온 길이고 노동자‧민중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이 길을 개척해 온 역사적 주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깨 펴고 걸고 힘차게 나아가자.
가열차게 달려온 헬조선변혁!
독점재벌해체, 민중권력 쟁취의 중단없는 투쟁으로 도도한 대중운동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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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27일 한국은행은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 제도를 개편하여 필요시 약 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비은행권에 즉각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 131조원의 급격한 연체로 인한 뱅크런 발생에 대한 대비 차원인데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반증이다.
2) 상법 제393조 (이사회의 권한) ①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3) ‘민주당, 글로벌 기업을 돕다-반도체 글로벌 경쟁과 삼성 오너 경영의 역할’(2023.6.13.), ‘민주당, 글로벌 기업을 돕다-LG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확보와 오너 경영의 역할’(2023.7.19.)
4) 재벌해체와 구분하여 재벌체제 해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던 송태경은 자신의 블로거에서 운동진영이 주장해온 ‘재벌해체’를 버리고 자신이 이후 민주노동당 방침이 된 ‘재벌체제 해체’로 바꾼 과정과 재벌체제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과정도 음모적이지만 내용도 반독점투쟁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1997년 권영길 후보의 공약이 ‘재벌체제 해체’로 발표된 것은 전적으로 송태경 덕분이다. 당시의 정책위원회에서 ‘재벌 해체’를 의결하였지만, 단 한 명의 반대자였던 송태경은 기자회견 발표 몇 분 전 내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기자회견문 파일에 ‘체제’를 집어넣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권영길 후보가 인쇄된 그대로 ‘재벌체제 해체’라고 읽은 것은 물론이고.” “재벌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재벌일가의 소유경영구조의 문제입니다. ... 재벌해체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론가라는 사람들 대다수와 다수 대중에게 재벌해체는 곧 대기업집단을 해체한다는 의미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고, 정치적 설득력조차 전혀 없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오해의 소지가 너무나 크고 분명하며 대중적 지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재벌해체 용어를 경제정책에서 배제하고, 소유경영구조의 민주화 주장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 ‘재벌개혁-경제민주화’ 또는 ‘재벌체제 해소-경제민주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태경, 「송태경의 블로거-삶과 사회적 사랑」, 최초의 대안적 정치운동, 그리고 이근원, 2023.8.10. https://blog.naver.com/urisaju/221481010681)
5) 최용섭, 『신냉전에서 살아남기 :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위한 12가지 질문』, 미지북스, 2022, 226쪽. 최교수는 2020년 논문에서 분단블록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실패하게 된 대안 블록을 개념으로 제시하지 않았으나 2022년 상기한 책에서 향후 만들어가야 할 대안블록으로 평화블록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패했지만 다시 만들어가야 할 블록으로 통칭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6) 그러나 최용섭 교수는 평화블록을 제시하면서 독점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변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으로 북한의 자본주의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독점재벌 구조는 온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북 경제, 정치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평화블록 역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실패한 길을 답습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7) 민주노동당 탈당 후 결성한 진보신당 세력의 상층부도 조직적 결의를 묵살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8) 민주노총 규약‧규정‧규칙집(2023년 4월 24일), http://nodong.org/data_paper/781458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