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변혁 서울추진위원회 발기문
2017년 12월 18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트렌드가 되어 있다. 어느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다.”라는 설문에 성인의 62.7%가 공감을 표했고,“공감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14.2%에 불과했다고 한다. 촛불혁명 당시“중고생들이여 함께 뭉쳐 헬조선을 끝장내자”고 외쳤던 10대들까지 포함한다면 헬조선이라는 말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 국민의 2/3에 육박할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과잉 불만의 과장 표출이 아니다. 썩어문드러진 한국사회 현실의 여과 없는 반영이며, 변혁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표현이다. 몇 해 전 한 서울대생이 수저 색깔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유서를 인터넷에 퍼뜨리고 투신자살한 데서 보듯이. 금수저는 못돼도 최소한 은수저는 돼야 성공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명문대학도 본인의 노오력이 아니라 부모의 계급이 높아야 갈 수 있고, 부모의 계급이 높아야 연줄로 공기업과 은행 취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계급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3포, 5포, 7포, N포 세대라는 말은 또 어떤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다가 금년 출산율이 1.07로 사상 최저로 떨어질 예상이고, 이혼 건수는 늘어난 반면 결혼건수가 전년대비 10%나 줄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0.9대로 더 떨어질 거라고 하는데, 연애·결혼·출산 포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현실은 취업차별·유리천장·경력단절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하다. 오죽하면 이화여자대학교 여학생들과 대화한 리카르드 IMF 총재가 이런 대한민국 현실을‘집단자살 사회’로 비유했겠는가? 또 정부발표 청년세대의 체감실업률이 20%를 넘고, 청년취업자 태반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비정규직이며, 아파트 한 채에 수억 원이 넘고, 전세금이 집값에 육박하는데, 취업포기·내집 마련 포기가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혼밥, 혼잠, 혼술, 혼행이 청년들의 생활양식으로 되고 있는데 인간관계 포기가 아니고 무엇이며, 10~30대 사망 원인 첫 번째가 자살이며 20대 사망의 40% 이상이 자살에 의한 사망인데, 희망 포기의 절망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헬조선은 청년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금수저·은수저에 끼지 못하는 노동자·민중들 모두에게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다.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으로 경제권력이 소수에게 극도로 집중돼 있는 극단적 양극화 사회다. 자산의 66%(50%의 하층은 고작 1.6%다!)와 소득의 절반 이상을 1% 금수저와 10% 은수저들이 독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런 경제권력을 배경으로 힘없는 다수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동반한 갑질을 해대고 있다. 유명 로펌인 김&장의 변호사들이 룸살롱에서 새파란 재벌3세에게 얻어맞고 머리채가 꺼들리고도 고소도 못한다. 그러나 이 은수저 변호사들은 그들 아래층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갑질을 한다.
가진자들은 정치권력 또한 독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선거하는 당일에만 존재하고 평일에는 자본독재 통치만이 존재한다. 이 가진자들에게 굴종하지 않고 광장과 거리에 나가 직접 소리를 외치려면 구속·벌금·물대포·구타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노동자에게는 권력은커녕 권리도 없다.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고, 만들어도 교섭을 할 수 없고, 교섭을 해도 파업을 할 수 없으며, 파업을 해도 정치파업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도 대한민국은 자본천국 노동지옥이다. 이렇게 경제·사회·정치 총체적으로 자본천국인 나라에서 노동자는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져 죽고, 기계에 눌려서 죽고, 스크린도어에 껴서 죽고, 기차에 치어서 죽고, 가스폭발로 죽고, 백혈병으로 죽고, 콜센터에서 고객의 폭언에 충격 받아 자살로 죽는다. 인구의 90%인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게는 고용보장도 소득보장도 없고 노후보장 또한 없어서 이들의 태반이 젊어서는 상대적 빈곤과 근로빈민층으로, 늙어서는 절대적 빈곤과 구호빈민층으로 전락한다. 이 궁핍으로 인해 우울증이 일반화되고 공황장애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정신질환이 확산되고 있으며, 좌절과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자살률이 10년 이상 세계최고이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압도적으로 세계최고이며,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최고를 향해 치닫고 있다.
설사가상으로 이 땅을 강점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가 노동자·민중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이들은 헬조선의 현지 지배세력과 함께 노동자·민중을 착취·수탈할 뿐 아니라 이 땅을 군사기지로 삼고 시시때때로 전쟁위기를 조성하여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제도권 정당과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제국주의의 강점과 전쟁책동을 방조하고 있다. 생활고에다 이런 정치·군사적인 고통까지 보태져서 국민의 반이 이민을 고려한 바 있고, 그 중 절반이“이민에 성공하면 국적을 포기할 의향”을 갖고 있다.
헬조선은 개혁이 아니라 변혁돼야 한다. 헬조선을 끝장내기를 갈망했던 우리 노동자·민중은 일년 전 촛불혁명으로 떨쳐나섰고, 반년여의 투쟁으로 박근혜 수구보수정권을 퇴진시키고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도구로 자처하고, 적폐를 청산한다며 국정원과 몇몇 국가기구에서 인적 청산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법·제도개혁은 시작도 못하고 있고, 그 나마의 인적청산도 초장부터 주춤거리고 있다. 더구나 헬조선의 적폐는 몇몇 국가기구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사회, 정치, 군사 모든 영역에 걸쳐 있으며,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만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서 민주정부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에 걸쳐 있다. 따라서 이 모든 시공간을 관통해서 악폐를 빚어내 온 근본적 사회구조인 천민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변혁하지 않는 한 헬조선의 적폐들은 계속 재현될 것이며, 그런 사회체제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추진되는 적폐 청산작업은 결국 촛불혁명을 이반하는 쪽으로 귀결될 것이다. 촛불혁명은 단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나 이명박근혜 정권의 이러저런 적폐 때문에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뿌리깊은 온갖 적폐가 뿌리뽑히고, 그 온갖 적폐를 빚어내 온 헬조선의 근본적 사회구조인 천민자본주의 사회체제가 뒤집어지기를 바라는, 노동자·민중의 갈망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헬조선을 변혁하려면 헬조선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악의 축들을 해체해야 한다. 그래야만 헬조선 체제가 무너지고 온갖 지옥 같은 현실이 사라진다.
첫 번째 축은 삼성을 위시한 독점재벌이다. 독점재벌의 지배망은 모든 경제영역에 걸쳐 있을 뿐 아니라 국가기구와 정당, 언론에서 나아가 일부 시민단체에까지 뻗어 있다.
두 번째 축은 국가비밀경찰인 중앙정보부의 후신 국정원이다. 이 비밀경찰의 촉수는 모든 국가기구에 뻗어 있고, 재벌총수에서 노동운동가까지 모든 국민을 감시와 사찰, 공작과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고 있다.
세 번째 축은 수구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검찰과 법원이다. 그들은 국민의 통제를 면제받은 채 지배세력과 정권의 명령을 받드는 도구 역할만 하고 있다.
네 번째 축은 수구정당이다. 이들은 재벌과 국정원의 지원·지도를 받으면서 온갖 거짓말과 연줄망으로 국민을 동원하여 수구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국회, 사법부 등을 창출·재창출한다.
다섯 번째 축은 수구 언론이다. 그들은 온갖 간교한 거짓말을 지어내 지배세력과 지배기구의 행위와 존재를 정당화한다. 또 헬(hell)조선을 헤븐(heaven)조선으로 둔갑시키고 국민을 우민화한다.
이밖에도 헬조선 천민자본주의 체제의 악의 축은 많다. 민족·민주·인간화에 반하는 천민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공·사립대학을 비롯한 부패 교육기관들도 악의 축이다. 수구 지배세력에게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하며 영적 세탁을 해주고 있는 대형교회들도 악의 축이다.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미군기지와 주한미군들도 악의 축이다. 이것들 역시 해체돼야 한다.
동지들, 누가 이 헬조선을 변혁할 것이며, 천민자본주의 체제의 악의 축들을 해체할 것인가. 자유주의 정권이 하랴,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하랴? 환상을 버리자.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권 10년을 통해서, 현재의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을 보면서, 그들이 이 역사적 과제를 감당할 수 없음을 충분히 확인했다.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판다는 말이 있다. 헬조선에서 고통받고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이, 헬조선 변혁을 갈망하고 있는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민중이 바로 이 썩은 헬조선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을 주역이다.
우리 민중은 지금 변혁을 앞장서서 선도해 나갈 집단을 고대하고 있다. 촛불혁명에서 보듯이 민중은 이런 선도집단을 구심점으로 단결되지 않으면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끌어내릴 수는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민중권력을 세울 수 없다. 그러면 현 체제의 권력에 의거하여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정당들이 과연 그런 선도체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앞장서 온 사람들이 이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이 마중물 역할은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합쳐야만 감당할 수 있다. 추구하는 이념과 노선의 차이, 노동·도시빈민 등 소속 부문이나 노조·정당·단체 등 소속 조직의 차이와 그 밖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뜻을 같이하는 개개인들이 통크게 통일전선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뜻이 있는 동지들!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지 말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당면변혁에 함께 복무하자. 변혁적 정치투쟁의 공동체를 이루자. 지금은 활동가 한사람 한 사람이 주체적 개인으로서 행동을 결단할 때다. 많은 동지들의 열화 같은 동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