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재단에 보내는 촉구문
전태일 재단은 한석호 사태를 계기로 철저하게 거듭나라! 전태일 재단을 사유화하지 말고 사회화하라!
1. 전태일은 누구인가? 전태일은 자신의 수기에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누구를 지적하여 인간상의 표준을 삼을 것인가?”라며 암울한 세상에서 사표(師表)로 삼을 사람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가 살아가던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정치가도 학자도 종교인도 민중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나약한 한사람의 노동자인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사름으로써 노동자의 대표가 되고 민중의 사표가 되었다. 모란공원 묘소 앞 묘비에는 ‘삼백만 근로자 대표 전태일’이라고 적혀 있다. 21세기 선진국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그는 우리 노동자·민중의 정신적 스승이다.
1. 전태일 재단은 무엇인가? 전태일 재단은 전태일 정신을 후 세대들이 잊지 않고 그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도록 도모하기 위해 만든 공익법인이다. 그런 목적으로 전태일 동지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일생을 바친 전태일의 어머니이고 노동자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가 추진하여 만들었다. 2009년, 기왕에 존재하던 전태일 기념사업회(1984년 창립)를 더욱 발전시켜서 당신의 사후에도 전태일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사업을 더 잘하라고 만든 것이다.
1. 그런데 이런 막중한 임무를 띤 전태일 재단이 최근 전태일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오다가 마침내 전태일 재단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다. 2020년 11월 전태일 50주기에 전태일 재단 한석호 사무총장 대행(당시 이사장 이수호)은 모 일간지에 전태일 정신을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머리를 맞대고 산업경쟁력을 고민하는 것”이라 왜곡하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사무총장으로 승진한 한석호는(이사장 이덕우) 2023년 2월 윤석열 정권이 대기업 정규직의 연공급 임금제를 직무급제로 개악하기 위해 만든 노동부 산하 상생임금위원회에 전문가위원으로 참여했다. 명분은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였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해법이라면서 “나도 처음에는 재벌해체론자였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일구는 데 재벌의 긍정적 역할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며 ”또 전문경영인들과는 달리 무한책임을 지는 오너 경영도 장점 중 하나“라고 평했다. 이것은 노동자를 무권리 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물질적 수단으로 삼으면서 전태일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열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그리고 지금도 숱한 노동자들을 중대재해로 생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한국 천민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이 천민자본주의 체제의 두 축인 독점재벌과 파쇼정권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을 넘어서 찬양을 하는 언행이다. 이는 마치 2023년 7월 재벌 총수들 제주포럼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이 한 연설을 듣는 듯하다. 이는 전태일 정신을 완전히 짓밟는 만행이다. 그런데도 전태일 재단은 당시 한석호 사무총장의 이 같은 반 전태일, 반 노동자 폭언·폭거에 대해 어떤 윤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에서 공식적으로 한석호 해임을 요구했음에도 전태일 재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 알려진 바로는 한석호는 상생임금위원회 참여 문제가 불거진 얼마 후 노동자를 배반한 김문수가 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차관급 위원으로 임용되기 위해 이력서를 제출했다가 이력에 문제가 있어 채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로써 한석호는 역대급 반노동 정권인 윤석열 정권의 노동운동 탄압, 노동운동 농락 기구인 경사노위에 김문수의 조수로 참여하려 한 점에서 전태일 정신 배반자일 뿐 아니라 파렴치한 출세주의자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 또한 출세를 포기하고 노동운동가가 된 전태일의 정신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다.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전태일 재단은 한석호를 해임하지 않았다.
1. 한석호는 지난 3월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기념사업으로 전태일 재단과 조선일보가 공동추진한 “12대 88 사회를 넘자”라는 기획기사를 연 10회에 걸쳐 보도케 했다. 이 또한 명분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이며 원흉인 독점재벌에 대해서는 해체는 물론 어떤 개혁도 요구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대기업 노동자들을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이들의 임금을 동결하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독점재벌, 그들이 경영하는 재벌언론과 언론재벌, 그리고 독점재벌의 대변인인 윤석열 정권의 목소리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이를 증명하듯 지난 13일 경사노위는 이 기획기사를 쓴 조선일보 가자 7명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이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에 김문수 위원장, 조선일보 기자들과 함께 한석호도 일렬로 서 있었다. 이처럼 뻔뻔하게 전태일을 모독하고 노동자를 모욕한 인물이 지금까지 김문수 말고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1. 그러나 이번에도 전태일 재단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태일 재단은 3월 25일 이사회에서 한석호의 사무총장 사퇴를 권고했고, 이 권고에 따라 한석호는 사무총장에서 사임했다. 그런데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이사장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조선일보와 기획해서 기사를 실었다는 것이다. 물론 재단의 조직적 검토나 이사장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행동한 것은 중요한 조직규율 위반으로서 전태일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체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직성은 전태일 상 수상의 기준에도 들어가 있는 항목이다. 그러나 설사 이사장의 승인이나 이사회의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은 전태일의 숭고한 정신을 모독한 반 전태일 행위이므로 이를 우선적으로 문제 삼았어야 했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심지어 이런 반 전태일 행위를 한 한석호를 비호하는 세력까지 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어정쩡한 대처로 인해 전태일 재단은 이번 사태를 겪고도 반성하고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 한석호 전 사무총장이 부당해고라며 관계기관에 제소한다는 둥, 전태일의 가족과 친구들이 이덕우 이사장도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한다는 둥 내부 분란만 벌이고 있다.
1. 전태일 재단은 과연 전태일 정신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단체로 거듭 날 수 있을까? 전태일 재단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재단에 이해관계니 지분을 주장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기타 그 동안 재단을 일구기 위해 수고한 공로를 주장하는 분들이 운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전태일 재단을 사회화해서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의 것으로 돌려줘야 한다. 전태일 재단은 몇 번 이사장을 바꾸고 이사진을 바꿨지만 올바르게 자리잡지 못했다. 전태일 기념사업회 당시와 전태일 재단 초기에는 민주적 통제구조가 있었고 매년 총회를 열어 중요한 의사를 결정했었다. 재단 이사회의 위에서의 통제와 함께 그런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민주적 통제가 있어야만 재단은 누구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복무하는 공적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길이다. 단지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또 이사진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전태일 재단을 이해관계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태일이 “어머니,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라고 했던 그 ‘만인’의 것으로 돌려주기 바란다. 그럼으로써 전태일의 정신이 올곧게 기려지고 계승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2024년 5월 19일 헬조선 변혁전국추진위원회 총회에서 결의